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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교를 찾는가"

 

 

http://banyajselfpsychotheraphy0.tistory.com/

 

<젋은 처자의 불교 입문기> 

   나와 같은 누군가를 위하여.

결혼하고 몇년이 흘러도 생기지 않는 아이 때문에 고민이 많은 부부가 있었다.

더욱이 아내는 병명 모를 아픔에 죽음을 앞두고 온 친지들이 인사를 하러 온다.

아내의 친정 어머니는 아픈 딸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어, 한 암자에 데리고 가-

밤낮없이 부처님께 빌고 또 빈다.

그렇게 몇날 며칠 몇달을 사랑하는 딸을 위해 빌고 또 빈다.

 

부처님의 가피였을까?

그 젊은 새댁은 언제 그렇게 아팠냐는 듯, 건강을 되찾았고 예쁘고 건강한 딸도 낳았다.

 

 

그 아이가 바로 '나'다.

그 젊은 새댁은 나의 엄마이고, 그 간절한 마음으로 딸을 위해 밤낮없이 기도하고 기도하신 분은 나의 할머니이시다.

 

나는 그렇게 '부처님의 가피'로 태어난 아이이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으신 우리 부모님과 외가댁은 절실한 불교신자들이시다.

나도 그런 집안 분위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불교가 내 종교가 되었다.

 

때가 되면 같이 절에 따라가 어깨너머로 배운 절을 하는 정도로.

 

하지만, 늘 마음은 '부처님'이 혹은' 불보살님'이 내 곁에 함께 해주시는걸 느낄 수 는 있었다.

나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느낌이였을지라도.

 

 

그럼,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참 된 불도에 뜻을 두게 되었나.  

 

언제부터 나는 스스로 불교를 "지극한 마음"으로 찾게 되었을까?

 

"죽고 싶었을 때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살고싶었다.' 간절히. 행복하게.

 

 

나는 나름 멘탈이 강했다. 강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에 무너졌을 때가 있었다.

몇년의 고통에 고통을 참아내다-정말 한번에 무너졌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곤, 나는 비난의 대상을 찾았다.

이 모든 상황을, 변해 버린 모든 것을, 망가져 버린 '나'를, '내 인생'을,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표현하자면.)

 

이 모든것에 대하여 나는, 비난 할 대상이 필요했다.

 

나는 분도했고 화로 가득 차 있었으며, 또 분노했다.

 

아무리 울어도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도- 분이 풀리지가 않았다.

그러다 지치면 울고. 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그래도... 나는 분이 풀리지가 않았다.

 

"한번 끓어 오른 물은 조금만 데워도 금방 끓어 넘친다. "

 

 

내 안에 '화'가 그렇다.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자존심 세고, 자만에 넘쳐 살았던 나였기에 <식어버린 국>이 되어 버린 내가, 나를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의 권유도 조언도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미 내 마음은 차가운 벽이 되었고, 그렇게 닫힌 벽은 매일 두껍게 '나'조차 들어 갈 자리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우연히 불교방송을 보았다.

 

"지금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있는 그 사람은, 내가 알게모르게 전생에 악업을 지은 사람입니다."

 

"이번 생에 이 업을 풀지 않으면, 또 다시 다음 생에 만나게 됩니다."

 

정말 끔찍했다.

 

나를 이렇게 몰아 놓은 그 사람을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야 하다니.

정말 끔찍히도 싫어 뒤통수가 '쨍'했다.

 

...... ......

 

그렇게 나는 조금씩 법문을 보기 시작했고,

 차츰 나는 '내가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은

 

'내 마음을 고처먹어야 겠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부처님의 가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던가!

 

그렇게 나의 '진짜' 불교 입문이 시작되었다.

 

열심히 불경도 읽고

훌륭한 법문도 듣고

염불도 외우고

참회기도를 올리고 

108배를 하고

사경을 하고

공부 하고

명상 하고

번뇌를 부처님께 올리고

 

그렇게 꾸준히 부처님의 가르침에 정진하게되었다.  

 

그렇게, '더 큰 나'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 결과가 궁금하시겠다.

 

결과는 없다. 아직.

아직 그 큰 깨달음은 너무나 먼길이다.

 

하지만 시작은 있었다.

 

어느 날 108배를 올리고 낮잠이 들었다.

눈은 뜨고 있는것 같은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가위다.'

저기 쇼파 밑에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들어가 있는것도 보이는걸로 봐서는 꿈은 아닌것 같았다.

옆으로 누워 있는 내 뒷쪽 발목에 한 여자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몸이 움직이질 않아 돌아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자 여자는 소리를 지른다. '악-------'

나는 그 상황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던것 같다. 

'관세음보살'을 외쳤다.

여자는 더 크게 소리를 지른다. 나는 더 크게 '관세음보살 '을 계속 외친다. 

그럼,여자는 더크게. 그렇게 나도 더 크게.

 

그렇게 내가 낼 수 있는 소리를 다 지를 때 쯤, 그 여자의 소리는 사라지고- 나도 일어 날 수 있었다.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글쎄...귀신이였을까?

 

나는 여자라고 생각했던  그 '존재'가

나였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의 거대한 분노"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내 안의 거대한 분노 거인'을 보냈다.

 

그리고 담담히 '나', '분노에 휩싸였던 나'-를  정중히 보냈다.

 

"잘가."

"이제 나는 널 보내야해."

 

"왜?"

"나는 너잖아...",

"너는 내가 너 안에 들어 있어야 하잖아."

 

"아니...너는 내가 아니야.

이제 때가 됐어. 나는 이제 너를 보내야해."

"미안해." ......"안녕."

 

분노는 하얀가면으로 나타나 조용히 사라졌다.

 

시원했지만 슬펐다.

한참을 조용히 울었다.

참회의 그리고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내 마음은 무엇인가 큰 돌덩어리가 빠져 나간 느낌으로 개운했다.

 

그게 나의 불교 입문 시작이라 볼 수 있겠다.

 

 

불법의 좋은 말을 함께 나누고자 한 카테고리에 제일 먼저 <나의 경험담>을 쓰게 된것은-

하나의 회고이자 나의 고백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분노의 거인과 함께 공존했던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불법에 힘을 얻어, 이번 생을 다시 잘 살아보기를 -그런 마음이 서기를-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이다.

 

꼭 불교가 종교가 아니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가고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불교는 '스스로의 실천과 체험-깨달음'의 종교이니까.

 

이렇게 힘들고 용기내어 쓴 나의 경험담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두 손모아 감사드린다.

 

모두 성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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